Lunch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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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Lunch Poem 2021. 8. 1. 19:40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 오규원,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 지성사(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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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 남들이 시를 쓸 때Lunch Poem 2021. 8. 1. 19:37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오늘도 감기지 않는 내 눈을 기다린다. 잠이 혼자 먼저 잠들고, 잠의 옷도, 잠의 신발도 잠의 문패도 잠들고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 지친 잠은 내 옆에서 쓰러지자 마자 몸을 웅크리고 가느다랗게 코를 곤다. 나의 잠은 어디로 갔는가. 나의 잠은 방문까지는 왔다가 되돌아 가는지 방 밖에는 가끔 모래알 허물어지는 소리만 보내온다.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시를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가. 남의 잠은 잠의 평화이고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이라고 남의 잠은 잠의 꿈이고 나의 잠은 잠의 현실이라고 나의 잠은 나를 위해 꺼이 꺼이 울면서 어디로 갔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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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 용산에서Lunch Poem 2021. 6. 28. 22:54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空想밖에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意志와 理想 속에 자라며 흔들리듯 그대의 사랑도 믿음도 나의 사기(詐欺)도 詐欺의 확실함도 확실한 그만큼 확실하지 않고 근사한 풀밭에는 잡초가 자란다. 확실하지 않음이나 사랑하는 게 어떤가.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詩에는 남아 있는 우리의 生밖에. 남아 있는 우리의 生은 우리와 늘 만난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믿고 싶지 않겠지만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 오규원,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 지성사(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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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 빗나가고 빗나가는 빛나는 삶Lunch Poem 2021. 6. 20. 05:14
너는 얼음도 구름도 바람도 물도 없는 곳에 도착한다. 너는 작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세계는 천장 한 귀퉁이로 모여드는 세 개의 직선과 다름없었다. 너는 하나의 꼭짓점에 모인 세 개의 직선을 늘일 수 있는 데까지 늘인다. 직선은 점점 곡선으로 휘어진다. 휘어진 곡선이 너를 향해 모여든다. 무수한 사람이 네 속에서 들끓고 있다. 무수한 목소리가 네 목소리 위로 내려앉는다. 무수한 길이 너를 지나간다. 기차는 얼음의 나라로 간다고 헀다. 하얀 눈 위의 하얀 나무 속을 건너간다고 했다. 너는 기차에 실려 간다. 너는 마비된 채로 나아간다. 너는 시간에 굴복한다. 너는 중력에 결박된다. 너는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움직이고 있다. 밤과 낮으로. 머리와 영혼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몸 밖의 일인가 몸 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