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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4. 그러지 않기로 한다
    Kitchen Table Novel 2021. 6. 20. 06:30

     



    "미흡한 예술 작품에 대해서 스스로 느끼는 자책감이란 일상적인 어떤 부족한 행실에 집착하는 죄의식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나쁜 요소는 찾아내고, 일단 시인한 다음, 가능하면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예술 작품으로서 그것이 지닌 결점들은 상당히 많지만 이를 바로 잡으려면 (중략) 나는 아마도 작품의 몇 가지 결함들뿐 아니라 본디 지니고 있던 장점들 역시 제거하게 되었으리라. 그래서 예술적인 자책감에 빠져 허덕이려는 유혹에 저항하며 나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같이 그대로 내버려두고, 차라리 무슨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소담출판사(2015), 머릿말 중


    헉슬리가 말했다.
    이미 쓰여지고 읽혀진 글을
    시간이 흘러서 고치는 건 무용한 짓이라고.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손보기 시작하면
    그 글은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까지 잃게 된다고.
    한 문장도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자신이라면 차라리 새 글을 쓰겠다고.

    그런데 나는 글을 자꾸 고친다.
    못하면 못하는대로 어설프면 어설픈대로
    그 때의 나는 저정도 밖에 안됐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인데
    왜 자꾸 쓰여진 문장들을 바로잡고 싶어질까.

    웃기는 건 바로잡은 글도 시간이 흘러서 보면
    또 엉망이라 다시 고치고 싶어진다.

    그렇게 고치고 또 고치고 고치고 고치다보면
    처음의 진심은 하나도 안 남고,
    새로운 글은 한 줄도 못쓰고,
    쓰여진 글만 고치다 죽겠지.

    이제 그러지 않기로 한다.

    2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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